06/08/2026
인출식 선반은 그 어둠을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. 손잡이를 당기면 안쪽이 스스로 걸어 나오고, 굽히지 않은 채로 내려다볼 수 있다.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일. 별것 아닌 것 같지만, 보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, 안다는 것은 다시 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.
살림이 몸을 이기지 않게 하는 것. 그것이 나이 든 부엌이 갖춰야 할 예의라고 생각한다. 오래 요리해온 사람일수록 좋은 부엌을 가질 자격이 있다. 부엌이 나에게 맞서는 대신 나를 향해 일하는 것, 안쪽이 사라지지 않고 매일 내 앞으로 나오는 것.
무릎이 기억하던 자세를 이제 손끝이 대신한다. 그 정도의 다정함은 받아도 된다.
탐나는부엌은 12년 동안 640여 곳의 부엌을 다시 지었습니다.
그 부엌마다 주인의 키가 달랐고, 자주 쓰는 손이 달랐고, 무릎이 기억하는 자세가 달랐습니다. 그래서 저희는 도면보다 먼저 그 집의 동선을 봅니다. 어느 칸을 매일 열고, 어느 칸을 일 년에 두 번 여는지.
지금 쓰시는 부엌에서 가장 자주 굽히는 자리가 어디인지,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.